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니, 해야 하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우린 그런 말들을 삼켜버린다. 말을 삼가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면서 살아간다. 그렇게 할 말을 하지 못한다. 해야 할 말을 제대로 하는 방법조차 잊어버리고 만다.

최근 너무나 많은 글을 쓰려고 초본만을 썼다가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들이, 논리적인 사고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태연자약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이러한 일들이 벌어진 것을 보고 경악하면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는가 하면 또 다른 일들이 경악스러움을 넘어서 공포스럽게 벌어지고 있다. 그런 더러운 풍경들이 거리에, 웹에, 미디어에 넘쳐난다. 새벽 5시, 술집과 유흥 업소가 즐비한 종로와 신촌, 잠실의 신천 거리에서 바람에 날려 어지러운 그런 것들 처럼 말이다.

세상을 향해서, 내가 속해있는 이 사회를 향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리고, 해야 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이고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 사회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구성원 스스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자신의 건강은 자신이 스스로 지켜야 하듯이, 스스로의 신체적 상태를 스스로가 책임지고 관리하듯이 스스로가 속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각자의 역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군포 여대생 실종 사건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고, 용산 철거민 참사에 대해서 해야 할 말이 있고, 이 대통령의 원탁 대화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니, 생각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정의란 것을 인식한다면 당연히 무언가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이 존재하는 것이다.

흔히 하는 이야기로 말에 힘이 있다고 하고, 말 한마디의 무게감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하기에 에로부터 내려오는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값는다' 는 속담이 있는 것이고, 고대로부터 웅변과 수사학은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모든 사회는 다양한 이야기가 돌아다닐 수 있는 통로들이 마련되어 왔다. 또한 현명한 위정자들은 소통의 속도와 소통의 양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양질의 정보를 빠른 속도로 받아 볼 수 있고 그러한 소통의 과정이 원할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언제나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그런데 2009년 2월, 지금 대한민국의 자칭 CEO, 최고 경영자라고 자신하는 이의 소통에 대한 인식은 그러하지 않은 것 같다.

많은 이해 관계로 인해서 이미 사회는 선과 악의 경계가 불문명해지고 말았다. 빛과 어둠처럼 이분법적으로 설명되는 사회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선하다고 생각하는 집단 내에서도 악은 존재하고 악하다고 생각되는 곳에도 작은 선은 존재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것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 없다면 애초에 소통은 불가능한 일이 된다. 인정하는 범부좌 인정하지 않는 범부로 나뉘어 있을 때, 그 범주를 나누는 경계 바깥에 존재하는 것과 과연 어떻게 소통을 이룬다는 것인가. 자신의 신념만이 선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굴레 속에서 그 어떤 소통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지난 31일에 있었던 이 대통령의 원탁 대화를 보면 더욱이 그러한 현상을 읽을 수 있다. 2시간 가까이나 진행되었지만 그 어떤 '대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저 일방적인 '통보' 만이 존재했을 뿐이다.

그것은 이 대통령 자신이 스스로의 인식과 시야 외의 것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방증이다. 또한 그것은 이명박이라는 사람의 인격과 성향을 나타내주는 감성적 지표이고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로서 결핍된 자질이다.

현실이란 것은 애써 외면하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의 인과로서 필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하기에 현실(現實) 이란 것은 한자어로 '나타난 열매' 라는 글자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인식으로 스스로의 말을 만들어 간다. 그러하기에 애초에 인식하는 방법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인식과 다른 인식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위해서 대화를 하고 소통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인식을 단지 '보여주기' 위한 통보와는 뿌리부터 다른 개념인 것이다.

결국엔 이번 31일에 있었던 '원탁 대화' 도 기획, 추진했던 사람에게는 대통령과의 소통의 판을 마련한 것이겠지만 그곳에 참여한 '인간' 은 소통이 애초에 불가능한 존재였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임에 불과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말았다.

그것을 시청한 국민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이 기획자에게 다소간의 위로가 되지는 않을지...GEE









신고
Write your message and submit
« PREV : 1 : ···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 : 40 : NEXT »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