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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블로그의 주제는 환경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블로그 이름도 "위험한 회색빛 사막에서.." 라고 지은 것이지요. 도시라는 밀집된 공간을 살아가는 현대인들, 그리고 저 또한 그런 현대인이라는 범주를 벗어난 사람은 못되기 때문에 그 회색 공간 속에서 나름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회색빛 공간, 즉 환경이라는 것이 비단 부피를 가진 물리적 공간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처한 현실, 정치적 상황, 사회 배경, 자주 접하는 문화 등 그 사람을 에워 싸고 있는 모든 것이 '환경' 이라는 이름의 공간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점점 우리 마음이 황폐해진다는 것과 지구상에서 사막화가 진행되어간다.. 라는 것은 같은 마음의 흐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지친 현대인들.. 마음 속에서 넓어지는 사막들..
(출처 : http://www.kfem.or.kr/kbbs/data/file/hissue/data_hissue_06.jpg)

그래서 점점 더 우리의 삶, 바로 '제 자신의 삶'을 둘러싼 사회 현상이나 현실에 대한 문제에도 눈길이 가곤 합니다. 그래서 다음의 블로거뉴스를 뒤적이거나, 메타 블로그에서 포스트들을 살펴 보기도 하고, 포털 싸이트에서 뉴스를 주욱 훑어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올라오는 뉴스나 글을 보면 마음이 점점 더 답답해짐을 느낍니다. 아마 다른 분들도 저와 같은 갈증을 느끼실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회는 점점 더 세분화되고 복잡해지고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사람의 삶, 그 자체는 점점 더 도외시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습니다.

수많은 생명의 터전을 일시에 빼앗아버린 삼성-허베이 기름 유출 사고는 사고의 원인 규명 및 어민들의 먹고 사는 보상 문제는 어느새 잊혀진 일이 되었고, 우리의 기억 속에는 언론에 의해 포장된 자원 봉사로 어려움을 이겼다 라는 어설픈 이미지만 흐릿하게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로 인해서 생겨나는 많은 고통과 어려움들은 그 상처가 깊게 곪아 갈수록 점점 더 흐릿해져만 갑니다.
(관련글 : 태안, 아직도 막막한 슬픔)

우리가 생명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물에 대해서도 너무나 안일하고 관념적인 사고가 팽배해져 있습니다. 그런 각자의 생각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국토를 가로지르는 대운하라는 정치적 아이템이 마치 현실처럼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단기간의 경제 지표에만 고정되어 있는 좁은 터진 시야로 영겁의 세월 이전부터 생명의 발원으로 존재했던 강물을 너무나 쉽고 가볍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 오만함의 극에 달한 작자가 대통령이 되었는데도 내로라 하는 언론들을 당선자의 '자'자부터 고쳐야 한다고 당선인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미국산 쇠고기를 거의 아무런 조건 없이 수입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아직 그 위험성에 대해서도 잘 인식하지 못하는 무서운 병의 위험성을 안고서 말입니다. 독립된 주권을 가진 한 국가로서 최소한의 의사 표시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국민 건강이라는 거창한 말을 쓸 필요도 없습니다. 바로 제 자신의 건강이 나도 어찌할 수 없는 사이에 위험 인자에 노출되게 되었다라는 그 사실에 무력함을 느끼고, 씁쓸한 분노를 느낍니다.

이 모든 것이.. 정말로 짧은 순간 안에 일어났습니다.

잠깐.. 지나간 시간을 떠올려 봅니다. 지난 2월. 숭례문이 무너지는 순간을 말입니다. 그 때 보았던 그 광경을, 마음이 무너지는 듯 아파오던 그 상처를, '나' 라는 존재를 지탱하는 한 축임에 분명한 '나라' 라는 단어에 생겼던 균열을 떠올려 봅니다. 그 무너지던 소리를, 수백년 이어오던 대들보가 힘없이 검은 연기 속에서 차가운 돌덩이 위로 떨어진 그 탄식을 말입니다.

역사와 인식, 의식의 흐름은 언제나 전진하는 것 만은 아닌가 봅니다. 지난 500 년을 지켜온 역사의 한 축이 휘청 거리는 것을 숭례문의 무너짐을 바라보면서 느꼈다고 한다면 조금은 과장된 표현일까요.

이상한 일입니다. '나' 라는 개인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한다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 때문에 왜 저는 '속이 상하는' 걸까요..

위험성의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라는 명제와 '안전하다' 라는 명제는 같은 것이 아님이 자명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교묘한 말놀림으로 그것이 마치 같은 의미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국민을 고통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야하는 국가와 정부에서 직접 나서서 그런 식의 논리를 펼친다는 것이 정말로 억울합니다. 이런 정부와 국가를 위해서 나 라는 개인은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할까요.

아직은 미완성인 제 자신이고 이 글도 그런 미완성된 스스로의 모습의 한 단편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스스로의 감정과 정서도 완성되지 않은 모습이란 것으로 해야 하는 이야기도 못한다는 것이 견딜수 없어서 이렇게 두서 없이 글을 쓰게 되었네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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